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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당, 그리고 이소노미아 학당

문래당 2022. 2. 8. 12:47

시작

‘문래당 이소노미아’는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 한 장소에 모여 인문고전과 사회철학, 예술이론을 함께 공부하고, 작은 차이를 넘어 공통의 언어적 지반을 만들며,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를 돌보는 환대와 우애의 커뮤니티입니다.

‘문래당文來堂’이라는 이름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학당, 풀어서 ‘글이 찾아오는 집’을 의미하고, ‘이소노미아isonomia’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폴리스의 원리로, 풀어서 ‘자유가 곧 평등’인 세계를 가리킵니다. 저희에게는 글과 집, 곧 함께 읽을 책과 함께 만날 장소가 필요하며, 자유와 평등, 곧 개인으로서 나만의 고유한 개성이 만개하는 삶과 시민으로서 서로의 동등한 권리를 존중하는 삶 모두가 소중합니다. 조직보다 개인, 사랑보다 존중, 행복보다 자유를 요구합니다.

문래당은 여러 대학의 인문학 연구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연구작업공간으로 출발하여 지금은 대안적 공부와 실천을 모색하는 대학생과 직장인, 이주민과 장애인 그리고 동물들이 모여 전공과 세대, 내이션과 사피엔스를 넘어 서로와 약하게 연결된 ‘공부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지향점

첫째, 인문고전을 함께 공부합니다. 작은 차이에도 균열하고 적대하는 ‘분리의 시대’에 작은 접점에도 연결되고 감응하는 ‘보편의 시대’를 음미합니다. 현대 한국은 ‘동일성에 대한 과잉 접속’과 ‘타자성에 대한 과잉 차단’이 극단화된 세계입니다.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갈등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의 관계가 아닌, 차이나는 존재들이 모여 조화로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관계를 지향합니다.

둘째, 사회철학을 함께 공부합니다. 우리의 삶을 튼튼하게 지지해줄 수 있는 사회경제적 토대의 가능성을 역사적ㆍ이론적으로 탐색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상적 실천을 모색합니다. 현대 한국은 ‘욕망의 무한함’과 ‘수단(기술ㆍ물질)의 과도함’이 극단화된 세계입니다. 본래 인간의 욕망은 유한한 것이 아닐까요? 기술ㆍ물질은 적정하게 컨트롤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항산恒産과 항심恒心, 항상적인 안정된 물적 기반과 항상적인 안정된 마음 상태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셋째, 공부를 이론만이 아닌 삶에서의 작은 실천으로 확장시키고자 합니다.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도 삼고자 합니다. 홀로 외롭고 서로 각박한 ‘고립의 시대’에 온라인의 비대면 접속만이 아닌 오프라인에서의 대면 접촉 또한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적정하게 병행하고자 합니다. 개인의 자유는 불안을 초래하고, 불안해지면 소속되고자 하며, 소속되면 구속된다고 느끼며, 구속되면 다시 자유롭고자 합니다. 자유를 원하지만 불안은 싫고, 소속을 원하지만 구속은 싫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자유와 구속받지 않는 소속은 불가능할까요? 개인은 무리를 싫어하고 권위를 싫어하며 속박을 싫어하면서도 무언가 ‘자기를 넘어서는 것’에 접속하고 소속되고자 합니다. 자유로운 소속감, 소속된 자유로움은 어떻게 동시에 가능할까요? 함께 이야기 나눴으면 합니다.

넷째, 공부를 통해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현대인은 존재로부터, 그 자신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생명으로부터, 초월적 존재로부터 소원해졌습니다. 어떤 것을 상실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단지 그것을 상실함으로써 자신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비참한 우리들은 종국엔 모두 늙고 병들어 죽을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왕이거나, 귀족이거나, 부자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벌거벗고 가난하게 태어나며, 삶의 비참함, 슬픔, 병듦,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겪게 마련이며, 종국에는 모두 죽게 된다. (…) 인간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이며, 우리 마음을 인간애로 이끌고 가는 것은 우리들이 공유하는 비참함이다. (…) 나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장 자크 루소, 《에밀》 4권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를 연결시킵니다. 우리의 죽음이 지금 곁에 있는 존재를 소중하게 합니다. 삶에 충실하고 삶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나를 돌보고 너를 돌보며 동물을 돌보고 이 세계와 그 너머에 대해 사유하려 합니다. 아이의 독립성은 오히려 의존성을 충분히 채워줄 때에만 자연스레 발생한다 합니다. 어른에게도 서로 의존하고 서로 기댈 수 있는 ‘공동체와의 깊고 지속적인 유대’가 필요합니다. 저희 공부 모임을 통해 연약한 우리들이 은은하게 서로와 연결될 수 있는 우애와 호혜의 관계망이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